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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극심한 장애 딛고 미주 순회 찬양
장애아 선교 위해 기금 모금 나서


(보스톤 = 보스톤코리아) 김현천 기자 = 살아날 확률 0%라는 병원의 말을 뒤집고 21년째 살고 있는 박모세. 이 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과학적으로 설명하기가 힘들다. ‘그 어머니 조영애 씨의 “기적”이라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질뿐.

지난 22일 금요일 오후 7시 합킨톤에 위치한 한인 장로교회를 방문한 박모세 군은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한인들 앞에 나서 찬양가를 불렀다.

이미 어머니 조 씨로부터 모세 군에 대한 기적적인 이야기를 들은 한인들은 그의 노래가흐르는 동안 눈물을 흘리는 등 감동에 겨워했다.

생존율 0%의 가능성을 뒤집은 박모세 군의 기적적인 이야기를 소개한다.

박 군은 태어나기도 전, 병원으로부터 낙태를 권장 받았을만큼 심각한 장애가 예견됐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 조 씨는 “사람의 생명은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적극 거부했고 1992년 모세를 출산했다.

예견처럼 그는 태어나자마자 뒤쪽 머리뼈(후두부 두개골)가 없어 뇌가 밖으로 흘러나오는 뇌류(腦瘤) 판정을 받았다. 병원 신생아실에서는 일대 소란이 일었고, 생존 확률이 0%라며 수술도 선뜻 해주지 않았다.

그의 부모들은 “어차피 가망이 없다면 수술이라도 해보겠다”고 우겨 모세 군은 태어난 지 사흘 만에 대뇌 70%, 소뇌 90%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담당 의사는 "뇌의 대부분을 잘라냈기 때문에 이 아이는 이제부터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장애가 너무 심해 살 수가 없을 겁니다"라는 절망적인 말을 부모에게 남겼다.

이후 모세 군은 4살이 되는 동안 4번의 뇌수술과 2번의 다리교정 수술, 총 6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다. 병원에서는 이 아이의 수술이 그저 실험적 시도였을 뿐, 희망을 걸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0%의 확률을 뒤집고 살아 났다. 뿐만 아니라 그의 이름 ‘모세’처럼 기적의 주인공이 됐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선고 받았던 아이가 아이가 앉더니 서고 걸었다.

더구나 다섯 살 때는 말문이 갑자기 터져 사도신경, 주기도문을 줄줄 외웠다. 반복적으로 들었던 소리를 모두 따라 했다. 일곱 살 때부터는 기억력으로 암송과 찬양을 하기 시작,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까지 됐다. 잘린 뇌가 점점 자라고도 있다.

노래를 좋아하는 모세 군은 2001년 삼육재활학교 초등과정 시절 여자프로농구 경기에서 애국가를 부른 것을 시작으로, 2007년부터 수원시 장애인합창단원으로 활동했고, 지난해에는 경북 경산시에서 열린 한국스페셜올림픽 전국하계대회 개막식에서도 애국가를 불렀다.

이어 지난 1월 말 한국서 열린 스페셜 (지적 장애인) 올림픽 첫대회 개막식에서 애국가를 불렀다. 전세계로 중계되는 이 대회는 140여개국이 참가한 자리였다.

21년을 한결같이 모세 군의 몸이 되어 그를 움직이게 해 준 어머니 조 씨는 강인함과 평온함이 함께 느껴지는 어조로 다음과같이 말했다.

“아이가 장애라는 사실을 받아 들이고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주는 것이 부모들에게 필요한 일이죠. 불평보다는 자신에게 있는 두세 가지라도 감사하는 마음이 행복의 원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에 있을 때 모세가 화장실을 찾아들어가 변기통을 올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행복감을 느낀다”는 그녀의 마지막 말에 모세 군은 어린아이같은 맑은 소리로 웃었다.

모세 군의 이번 미주 방문은 조이 선교회를 도와 장애인 학교 설립 기금 모금을 위해 이루어졌다.